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게실라오스 2세 (문단 편집) == 평가 == 스파르타에서 심각한 결점이었던 장애와 왜소한 체구를 갖고 태어났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팔랑크스]]의 선두에서 스파르타를 이끈 왕이다.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긴 대표적인 옛 역사가들은 [[크세노폰]]과 [[플루타르코스]]다. 크세노폰과 플루타르코스, 또 아게실라오스 2세에 대해 기록을 남긴 대부분의 고대 역사가들은 그를 상당히 고평가하고 있다. 그의 개인적 성품은 상당히 검소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대한 믿음이 굉장히 굳셌고, 용기, 절제, 엄격함 등의 여러 미덕을 갖추었다. 또한 그는 스파르타인답지 않게 가족과 친구를 중요하고 따뜻하게 생각했다. 또한 대단히 명석했다고 한다. 스파르타의 왕이라는 이미지에 안 맞게 아들 아르키다모스와 목마놀이를 하다 친구들에게 들킨 적도 있고, 아르키다모스의 친구인 클레오니모스의 아버지 스포드리아스가 피레우스에 불법침입했다 쫓겨나 처형당할 위기에 놓이자 아들의 친구가 슬퍼할 것을 염려해 스포드리아스를 사면하기도 했다. 크세노폰은 아예 아게실라오스 2세의 추종자로 살았으며 《스파르타 헌법》과 《아게실라오스》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는 일찍이 아게실라오스 2세 치세 초기의 아시아 원정 때 그의 군대에 합류해 스파르타군에서 오랫동안 복무했다.[* 이 때문에 고향 아테네에서 추방당했지만 아게실라오스 2세에게 좋은 저택을 받아 레욱트라 전투 이전까지 스파르타에서 살다가 레욱트라 전투 이후 코린트로 도주했다가 스파르타-아테네의 국교가 회복된 기원전 365년에 추방이 풀려 아테네로 돌아갔다.] 크세노폰 이외에도 많은 역사가들은 그를 스파르타 최고의 군주이자 그리스 군주의 모범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전쟁 군주였으며 일생동안 쌓은 커리어의 대다수가 전쟁이다. 그는 재위 초반과 후반엔 군사적 업적을 거두지만 정작 그의 재위기간에 스파르타는 몰락을 맞는다. 특히나 당시 스파르타는 아기아다이 왕들이 쫓겨나거나 죽는 등으로 자주 바뀌어 아게실라오스 2세가 사실상 원톱인 체제였다. 여기서 그에 대한 평이 갈리게 된다. 고대 역사가들은 스파르타의 몰락에 아게실라오스의 책임을 높게 잡지 않았다. 크세노폰과 플루타르코스 등이 지목한 스파르타의 몰락 원인은 리산드로스가 벌인 다른 폴리스들에 대한 과도한 정치적 억압과 아게실라오스 2세 왕을 제외한 아기아다이 왕들 등 다른 장수들의 군사적 실패였다. 실제로 이는맞는 이야기였고, 2,000년 가까이 이런 사관이 이어졌다. 하지만 몇몇 현대 역사가들은 아게실라오스 2세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의 전적을 분석하면 아게실라오스 2세는 군사적으로 해전과 공성전에 약했던 것이다. 거기다 키나돈의 반란 모의에서 드러난 스파르타의 인플레이션 등에도 조치를 취하려 한 흔적이 없어 전형적인 맹장형 군주처럼 내정에 약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혹도 있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존 버리는 아게실라오스 2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전한 최강국 스파르타를 물려받아 치세 내내 패배만 했으며 그의 시기에 스파르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물론 아게실라오스 2세와 동시대를 산 역사가들의 평이 워낙 좋고,[* 다만 이런 역사가들 중에는 크세노폰 같은 스파르타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이들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스파르타의 몰락은 왕 하나의 능력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총체적인 제도의 문제였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스파르타의 왕은 실권이 약했다.] 아게실라오스 2세가 즉위했을 때 이미 리산드로스의 전리품으로 인해 스파르타의 사회 분위기는 해이해졌고, 아게실라오스 2세는 군사적으로 분투했으나 그 이외의 장수들의 승률이 너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치세 전반에는 리산드로스가 나라 안팎을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치세 전반을 비판하려면 리산드로스를 비판하는 게 맞는다. 정리하자면 업적 면에서 보면 패배의 연속으로 스파르타 최고의 군주라는 호칭이 맞지 않을 지도 모르나, 개인의 성품과 놓여진 시대 상황에 할 수 있는 만큼 대응한 부분에서 결국 스파르타 최고의 군주라는 호칭을 증명해낸 왕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 동안 쌓이고 쌓인 스파르타의 병폐들이 터진거고 하필 그 당시 왕이였던 아게실라오스가 덤탱이를 뒤집어 쓴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